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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Baskerville 은 Kidderminster의 가까이에 있는 Wolverley의 Sion언덕 농장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그는 활자 자체를 사랑하였고 레터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720년에, 그는 버밍엄에 가서 calligraphy 교사겸 조각가가 되었다. 대략 1740년에 그는 옻칠 공예를 시작했다. 그의 예술적인 시각, 뛰어난 감식력이 그의 예술 작품을 정밀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특성들이 이후에 그의 인쇄물에서도 보여졌다. 1750년대까지 그는 옻칠 공예를 통해 모은 재산을 투자하여 인쇄소를 설립하고, 양질의 인쇄물 실험과 출판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활자 미의 찬미자로서 완 성된 활자체를 만들기 위해 타입의 참된 비율을 고안하며 이미 나와있는 것보다 더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글자체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Basker - ville은 인쇄 구조의 혁신, 향상된 활자 디자인, 자신만의 검은 잉크의 발명, 종이 만드는 과정을 개량하여 만들어졌다. 1757년 4월에, Baskerville의 첫번째 책 -Virgil의 시- 은 Easy Hill에 있는 그의 집에 있는 소형 인쇄기로 출판되었다. Milton의 Paradise Lost와 Paradise Re - gained, Addison의 작품집, Aesop의 우화, Horace 시, 그리고 몇몇 다른 라틴 시들의 작업이 그 뒤를 따랐다. Baskerville의 시 고전작들’은 높게 칭찬받아졌 고 책애호가들에 의해 수집되었다. 1758년에 그는 그가 성경과 기도서를 출판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인쇄업자로 임명되었다. 자유사상과와 무신론자에게는 얄궂게도, 그의 가장 정밀한 책이라고 여겨지는것이 성경이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Molini의 형제인 프랑스 서적상에게 임명된 Lodovico Ariosto의 Orlado Furioso이다.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은 이 판에 넣을 삽화를 그리기 위해 고용되었다. 그의 목표는 결코 많은 책을 인쇄하는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들의 예술적인 질을 개량하고, 영국 출판업에 대한 심미적인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Baskerville의 책은 유럽과 미국 전체에서 경탄되었다. Benjamin Franklin과 Lunar Society의 일원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구독자이었다. 스코틀랜드 사학자 W.Robertson 와 프랑스 극작가 Beaumarchais 둘 다 Baskerville를 천재의 남자이라고’칭했다. 그는 유명한 당시대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인쇄소인 F. - A. Didot와 D.Bodoni 에 큰 영향을 미쳤다. Baskerville의 Easy Hill Press는 이십년 못되게 운영되었다. 그러나 그 프로덕션은 버밍함이 논의의 여지없이 유럽 출판업의 중앙에 놓이도록 하였으며 BIR - MINGHAMIAE TYPUS JOHANNIS BASKERVILLE’이란 책의 타이틀에 예술 세계의 보물이라고 쓰여지게 되었다. 활자꼴의 디자이너_John baskerville 트랜지셔널 스타일은 손으로 쓴 글자 형태에 기반을 둔 휴머니스트, 게럴 드 스타일과 그 후에 등장한 디돈 스타일 사이의 과도기적 양식이다. 이 양식의 출발점은 1694년 프랑스 루이 14세의 명으로 왕실에서 사용하기 위 해 고안된 서체, ‘왕의 로만’이다. ‘왕의 로만’은 가로세로 각 48개의 눈금이 만들어내는 총 2천3백4개의 모듈 그리드 위에 글자 하나하나를 구 성한, 형태적 정확함과 수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서체였다. ‘왕의 로만’ 은 18세기 유럽의 활자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60여 년 후 영국의 존 배스커빌의 서체 디자인에 그 특징이 재현되었다. 존 바스커빌은 프랑스에서의 ‘왕의 로만’등 진보된 활자 형태를 의식 하였다. 1754년, 그가 여러 해 동안 연구해 발표한 서체 ‘바스커빌’은 당 시 영국에서 널리 유행하던 ‘캐슬론’과는 매우 다른 서체였다. 바스커 빌은 획의 굵기 차이가 뚜렷하고, 세리프의 모양이 정교하며, 글자의 수직 성이 강조되는, 고전적 아름다움과 기계적 통일성이 하나가 된 서체였다. 다소 강한 질감으로 높은 가독성이 특징인 캐슬론에 익숙한 영국의 독자 와 전문가들은 바스커빌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서체뿐 아니라 가장자 리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하던 당시 출판물들과 너무 다른, 흰 지면에 놓 인 검정 활자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바스커빌의 출판 디자인들도 환영받 지 못했다. 바스커빌의 역사 what 바스커빌 when 1754년 where 버밍엄, 영국 why 세리프 서체 의 고전적 아름다움에 통일된 질서를 부여함 who 존 바스커빌 1705~1775 영국의 캘리그래퍼, 혁신적 인쇄 기술자. 글씨에 대한 안목과 끊임없는 기술 혁신 으로 활자디자인뿐 아니라 종이, 잉크, 인쇄 기술 등을 모두 한 차원 끌어올렸다. 배스커빌은 완벽에 가까운 풍부하고 우아한 형태와 적당한 굵기, 소문자 높이로 인해 오늘날 에도 매우 인기 있는 본문용, 또 제목용 서체이다. 배스커빌은 1923년 영국의 모노타입사에 의 해 연구되고 재탄생하면서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현재까지 여러 버전 의 디지털 폰트가 나와 있으며 그중에서 1982년 미국의 ITC사에서 재현한 폰트에는 ‘New Baskerville’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Image: Portrait of John Baskerville (1706-1775), Type Founder and Printer, painted by James Millar in 1774. Oil on canvas. Gift of the Rev A H Caldicott, 1940. ‘It is not my desire to print many books; but such only, as are books Consequence, of intrinsic merit, or established Reputation, and which the public may be pleased to see in an elegant dress, and to purchase such a price, as will repay the extraordinary care and expense that mu be necessarily be bestowed upon them.’ 활자의 쓰임새 바스커빌은 섬세하고 정교한 세리프를 가지고 있으며, 엑스하이트가 크고 치밀하게 짜였고, 우 수한 비례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점이 바스커빌 을 가장 보기 좋고 읽기 쉬운 활자체로 만들어 주었으며 또한 우아한 느낌이 나게 한다. 바스커빌의 쓰임새는 보통 가독성이 높아 본문 용 서체로 쓰이나 글자 특유의 우아한 느낌 덕 분에 우아하고 고상한 느낌을 나타낼 때도 쓰 인다. 심슨 종이회사(Simpson Paper Company)를 위한 시간 을 소재로 한 소책자 디자인. 배스커빌 이탤릭의 특성 이 잘 살아난다. 펜타그램, 마이클 비에루트, 영국. 왼쪽에 나열된 글자는 바스커빌의 대문자인데 너비가 가장 큰 W와 중간크기인 G, 작은 크기인 B를 기준으로 아래로 나열되어 있다.. 바스커빌의 대문자의 너비는 대략적으로 W,G,B 세 가지로 나뉜다. 아래의 그림은 대문자 너비를 측정하기 위해 글자를 겹쳐놓은 것 이다. 대문자 가로폭의 너비를 측정해 본 결과 W(1)가 제일 크고 I (2)가 가장 좁다. W와 I의 너비 비율은 3:1이다. * Baskerville -John Baskerville

Baskerville -John Baskervillepds24.egloos.com/pds/201109/24/65/DesignResearch.pdf · what 바스커빌 when 1754년 where 버밍엄, 영국 why 세리프 서체의 고전적 아름다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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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Baskerville -John Baskervillepds24.egloos.com/pds/201109/24/65/DesignResearch.pdf · what 바스커빌 when 1754년 where 버밍엄, 영국 why 세리프 서체의 고전적 아름다움에

John Baskerville 은 Kidderminster의 가까이에 있는 Wolverley의 Sion언덕 농장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그는 활자 자체를 사랑하였고 레터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720년에, 그는 버밍엄에 가서 calligraphy 교사겸 조각가가 되었다. 대략 1740년에 그는 옻칠 공예를 시작했다. 그의 예술적인 시각, 뛰어난 감식력이

그의 예술 작품을 정밀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특성들이 이후에 그의 인쇄물에서도 보여졌다.

1750년대까지 그는 옻칠 공예를 통해 모은 재산을 투자하여 인쇄소를 설립하고, 양질의 인쇄물 실험과 출판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활자 미의 찬미자로서 완

성된 활자체를 만들기 위해 타입의 참된 비율을 고안하며 이미 나와있는 것보다 더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글자체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Basker-

ville은 인쇄 구조의 혁신, 향상된 활자 디자인, 자신만의 검은 잉크의 발명, 종이 만드는 과정을 개량하여 만들어졌다.

1757년 4월에, Baskerville의 첫번째 책 -Virgil의 시- 은 Easy Hill에 있는 그의 집에 있는 소형 인쇄기로 출판되었다. Milton의 Paradise Lost와 Paradise Re-

gained, Addison의 작품집, Aesop의 우화, Horace 시, 그리고 몇몇 다른 라틴 시들의 작업이 그 뒤를 따랐다. ̀Baskerville의 시 고전작들’은 높게 칭찬받아졌

고 책애호가들에 의해 수집되었다. 1758년에 그는 그가 성경과 기도서를 출판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인쇄업자로 임명되었다. 자유사상과와 무신론자에게는

얄궂게도, 그의 가장 정밀한 책이라고 여겨지는것이 성경이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Molini의 형제인 프랑스 서적상에게 임명된 Lodovico Ariosto의 Orlado

Furioso이다.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은 이 판에 넣을 삽화를 그리기 위해 고용되었다.

그의 목표는 결코 많은 책을 인쇄하는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들의 예술적인 질을 개량하고, 영국 출판업에 대한 심미적인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Baskerville의 책은 유럽과 미국 전체에서 경탄되었다. Benjamin Franklin과 Lunar Society의 일원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구독자이었다. 스코틀랜드 사학자

W.Robertson 와 프랑스 극작가 Beaumarchais 둘 다 Baskerville를 천재의 ̀남자이라고’칭했다. 그는 유명한 당시대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인쇄소인 F. - A.

Didot와 D.Bodoni 에 큰 영향을 미쳤다.

Baskerville의 Easy Hill Press는 이십년 못되게 운영되었다. 그러나 그 프로덕션은 버밍함이 논의의 여지없이 유럽 출판업의 중앙에 놓이도록 하였으며 ̀BIR-

MINGHAMIAE TYPUS JOHANNIS BASKERVILLE’이란 책의 타이틀에 예술 세계의 보물이라고 쓰여지게 되었다.

활자꼴의 디자이너_John baskerville

트랜지셔널 스타일은 손으로 쓴 글자 형태에 기반을 둔 휴머니스트, 게럴

드 스타일과 그 후에 등장한 디돈 스타일 사이의 과도기적 양식이다. 이

양식의 출발점은 1694년 프랑스 루이 14세의 명으로 왕실에서 사용하기 위

해 고안된 서체, ‘왕의 로만’이다. ‘왕의 로만’은 가로세로 각 48개의

눈금이 만들어내는 총 2천3백4개의 모듈 그리드 위에 글자 하나하나를 구

성한, 형태적 정확함과 수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서체였다. ‘왕의 로만’

은 18세기 유럽의 활자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60여 년 후 영국의

존 배스커빌의 서체 디자인에 그 특징이 재현되었다.

존 바스커빌은 프랑스에서의 ‘왕의 로만’등 진보된 활자 형태를 의식

하였다. 1754년, 그가 여러 해 동안 연구해 발표한 서체 ‘바스커빌’은 당

시 영국에서 널리 유행하던 ‘캐슬론’과는 매우 다른 서체였다. 바스커

빌은 획의 굵기 차이가 뚜렷하고, 세리프의 모양이 정교하며, 글자의 수직

성이 강조되는, 고전적 아름다움과 기계적 통일성이 하나가 된 서체였다.

다소 강한 질감으로 높은 가독성이 특징인 캐슬론에 익숙한 영국의 독자

와 전문가들은 바스커빌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서체뿐 아니라 가장자

리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하던 당시 출판물들과 너무 다른, 흰 지면에 놓

인 검정 활자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바스커빌의 출판 디자인들도 환영받

지 못했다.

바스커빌의 역사 what 바스커빌 when 1754년where 버밍엄, 영국

why 세리프 서체의 고전적

아름다움에 통일된 질서를 부여함who 존 바스커빌 1705~1775

영국의 캘리그래퍼, 혁신적 인쇄 기술자. 글씨에 대한 안목과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활자디자인뿐 아니라 종이, 잉크, 인쇄

기술 등을 모두 한 차원 끌어올렸다.

배스커빌은 완벽에 가까운 풍부하고 우아한 형태와 적당한 굵기, 소문자 높이로 인해 오늘날

에도 매우 인기 있는 본문용, 또 제목용 서체이다. 배스커빌은 1923년 영국의 모노타입사에 의

해 연구되고 재탄생하면서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현재까지 여러 버전

의 디지털 폰트가 나와 있으며 그중에서 1982년 미국의 ITC사에서 재현한 폰트에는 ‘New

Baskerville’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Image: Portrait of John Baskerville (1706-1775), Type Founder and Printer, painted by James Millar in 1774. Oil on canvas. Gift of the Rev A H Caldicott, 1940.

‘It is not my desire to print many books; but such only, as are books of Consequence, of intrinsic merit, or established Reputation, and which the public may be pleased to see in an elegant dress, and to purchase at such a price, as will repay the extraordinary care and expense that must be necessarily be bestowed upon them.’

활자의 쓰임새 바스커빌은 섬세하고 정교한 세리프를 가지고

있으며, 엑스하이트가 크고 치밀하게 짜였고, 우

수한 비례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점이 바스커빌

을 가장 보기 좋고 읽기 쉬운 활자체로 만들어

주었으며 또한 우아한 느낌이 나게 한다.

바스커빌의 쓰임새는 보통 가독성이 높아 본문

용 서체로 쓰이나 글자 특유의 우아한 느낌 덕

분에 우아하고 고상한 느낌을 나타낼 때도 쓰

인다.

심슨 종이회사(Simpson Paper Company)를 위한 시간

을 소재로 한 소책자 디자인. 배스커빌 이탤릭의 특성

이 잘 살아난다. 펜타그램, 마이클 비에루트, 영국.

왼쪽에 나열된 글자는 바스커빌의 대문자인데 너비가 가장 큰 W와

중간크기인 G, 작은 크기인 B를 기준으로 아래로 나열되어 있다..

바스커빌의 대문자의 너비는 대략적으로 W,G,B 세 가지로 나뉜다.

아래의 그림은 대문자 너비를 측정하기 위해 글자를 겹쳐놓은 것

이다. 대문자 가로폭의 너비를 측정해 본 결과 W(1)가 제일 크고

I(2)가 가장 좁다.

W와 I의 너비 비율은 3:1이다.

*Baskerville-John Baskerville

Page 2: Baskerville -John Baskervillepds24.egloos.com/pds/201109/24/65/DesignResearch.pdf · what 바스커빌 when 1754년 where 버밍엄, 영국 why 세리프 서체의 고전적 아름다움에

메이와뎅키는 1993년, 마사미치(Masamich)와 노부미치(Nobumichi) 토사 형제가 시작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이들 형제는 손수 만든 기

형적인 모양의 악기를 가지고 전시, 공연을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이들의 퍼포먼스는 소니뮤직 엔터테인먼트(Sony Music

Entertainment)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고, 1998년 이후에는 마사미치가 직접 운영하는 요시모토 코교사에서 맡아 진행하는데, 현재는 동

생인 노부미치가 운영하고 있다.

메이와뎅키는 노부미치 토사의 벌명품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소제목에 따라 그 산하에 만들어진 발명품(악기)들은 개개의 상품으로 간

주되고, ‘프로덕트 데모스트레이션’이라 불리는 전시나 퍼포먼스를 통해 세상에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어떤 사물이나 생물에서 모티

브를 잡아 시리즈 별로 악기들을 발명했는데, 생선으로 모티브를 잡은 넌센스 기계는 ‘단키 시리즈’, 오리지널 음악, 뮤지컬 악기들

이 주요 모티브가 되는 것은 ‘츠쿠바’(Tsukuba) 시리즈, 그리고 꽃이 모티브가 된 ‘에델바이스’ 시리즈 등으로 분류된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주 목적을 전자기기 제작이라고 정해놓고 있지만, 사실상 100V 전기로 작동하는 노커라는 전기부품과 전기 스위

치, LED를 기반으로 하여 수없는 잡다한 자동 타악기, 혹은 현악기를 베이스로 하는 전자동 타악기 형태의 창작 악기류를 생산하고, 판

매하며, 제품들로 전시회를 열고, 또한 이를 연주하며 전위예술을 하는 등 댜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작품

은 ‘제품’이며 라이브 공연이나 퍼포먼스는 ‘제품 시연회’의 일환이다. 작품은 음악, 공연, CD와 DVD, 책, 장난감, 문구용품, 전기

제품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 활동을 일컬어 A(art), B(book), C&D(CD), E(exhibition), F(fashion), G(goods)라고 부른다. 메이와덴키의 단독

멤버 토사 노부미치는 사장이자 아티스트, 디자이너, 엔지니어, 음악가인 셈이다.

메이와뎅키는 전시회, 라이브 무대, 공연, 음악 제작, 비디오, 글, 장난감 상품, 문구용

품, 전기 장치/도안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상품으로 세분화 되어 사업을 확장하고 있

다. 지난 해 여름,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의 전시회가 열렸는데, 이들의 독창적인 아이디

어와 시도는 런던과 파리 등 유럽 문화 공간에서도 꾸준히 전시되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중에게 접근할 새로운 방식을 꾸준히 계획하고 구상하는 이들은 전 세계를 상

대로 전시회를 갖고 있다

메이와뎅키의 사장인 노부미치 토사는 아티스트이자 발명가이며, 문화해설자이

다. 그는 테크노 밴드를 하면서 테크노 아트에 관심을 갖게 되고, 대학에서는 그

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후에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형과 함께 운영하

면서 다양한 장르의 아트를 만들어냈다. 그는 메이와뎅키를 ‘아트 유닛’이라

부르고, 자신의 예술 작품들은 ‘제품’이라 한다. 그는 항상 전기회사들의 전통

복장인 회색의 작업복을 입고서 그의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

단순히 순수미술이나 예술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수 있는 상품을 개발, 판

매하기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로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제품들은 실제 소비성의 상품들이 아닌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노부미치 토사씨가 설립한 명화전기(Maywa Denki)의 제품들은 그 독특한 제품

외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비주얼을 통해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제품에 대

한 새로운 고찰을 가능케 하고 제품들이 겉으로 가진 속성과 내부의 속성을 보

다 심도있는 예술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 대중적인 동의와 지지를 얻어 실제 쓸

모없어 보이는 상품에 대한 가치를 부가시키고 있다.

노부미치 토사: Artist Inventor

Culture analyst실제로 메이와뎅키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그 구조

가 참으로 기발하다. 희한한 모형으로 독특한 장난

감을 만들어 이것으로 음색을 만들고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사운드로 테크노 아트류의 합주를 하는데, 그

야말로 현대 하이 테크놀로지와 아트 비즈니스의 모

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만든 발명품으로 무대

에서 공연한다고 해서 이들을 뮤지션 혹은 아티스트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무대에서 공장에서나 입는 작

업복과 모자를 쓰고 손수 만든 악기를 가지고 공연

을 하고 세미나를 갖는다.

토사 형제는 무대에서 공연하는 동안에 형제는 작업복을 차려입고 등장하는데, 이들

이 만든 기하학적인 조형물들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음색을 만들어내며 조명과 시

각적인 효과들을 곁들여 총체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사람 태아의 얼굴을 한 복화

술사 모형도 ‘메이와뎅키’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방아쇠를 당기면서 입을 움직이게 만든 이 모형은 전시 공간에도 등장하는데, 갤러리

바닥에 단정하게 눕혀 디스플레이 한 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일 갤러리에

도착하는 선착순 5명에게 189달러에 주는 등 현대 미술관에서나 볼 법한 독특한 전시

회를 갖기도 한다.

복화술사 모형은 당신이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도구로 문화 연구 쪽에서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모드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입을 움직이게 하는 방아쇠는 고립을 증대

시키는 메타포로 소개되고 있다. 메이와뎅키는 일본의 한 잡지에서 있었던 투표에서

1995년에 열린 일본 최고의 아트 전시회 가운데 큰 영향을 미친 전시 11위에 랭크되었

는데, 이 가운데에는 반 고흐와 피카소 등 블록버스터급 전시도 등장했었다.

Page 3: Baskerville -John Baskervillepds24.egloos.com/pds/201109/24/65/DesignResearch.pdf · what 바스커빌 when 1754년 where 버밍엄, 영국 why 세리프 서체의 고전적 아름다움에

바나나 우유가 나와 인기를 모으던 때는 바나나 한 개가 사과나무 한 그루만큼 귀했던 시기였다. 한 가정의 경제적 영양가도 우유로 상징되던 시기였으니, 바

나나와 우유의 어울림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럭셔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어디서나 찾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소풍가방이나 수학여행

배낭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단지 우유에 바나나 향을 조금 첨가했을 뿐이지만 그 시대의 바나나와 우유가 가진 이미지를 그대로 담은 ‘고급 음료’였

던 것이다. 그런데 바나나와 우유가 평범하고 싼 먹을 거리로 전락(?)한 지금까지도 바나나 우유가 자리를 잃지 않고 여전히 빛을 발하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

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 무난하면서도 넉넉한 용기의 모양 때문이 아니었을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위, 아래가 좁고 허리가 풍만한 바나

나 우유의 용기는 조선후기 달 항아리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듯하다. 딱히 멋있거나 화려하지도 않고 그저 수수한 것이, 편안하면서도 넉넉해 보인다. 둥글둥

글한 모양은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음료를 담을 수 있는 용적과 용기를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데에 유리한 모양 등을 생각해 보면, 이 용기의 기능성은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특히 배가

볼록하고 짜리몽땅한 용기의 모양은 손으로 잡기에도 냉장고에 넣을 때에도 효율을 크게 도와주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음료수 용기가 길쭉한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보관하거나 옮길 때, 혹은 손으로 잡는 것을 고려한 결과이다.

그러나 기능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형태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번쩍거리는 콜라 캔이 눈에는 잘 뜨이지만 차갑고 메마른

촉감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바나나 우유가 다른 음료들을 제치고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각광받는 데에는 각박하게 기능성만을 따지지

않고,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넉넉한 자태가 큰 역할을 한 듯 싶다. 감성적 디자인의 사례인 것이다. 반투명의 재질을 통해 한 단계 중화되어서 은

은하게 우러나오는 바나나 우유의 색상 또한 무시 못할 매력이다. 많은 음료수 용기들이 저마다 뚜렷한 색으로 매장 안에서 돋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

런 톤 높은 목소리는 잠깐은 시선은 집중시킬 지 몰라도 금방 질려 버리기 마련이다. 눈에 금방 띄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렇게 나지막한 목소리를 가진 색깔

이 더 오래 동안 질리지 않고, 신뢰감을 준다. 바나나의 색깔에 우유의 색깔이 섞인듯한 은은한 색깔은 그러한 지속성과 신뢰성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

리고 이 은은한 노란색은 음료를 마시지 않더라도 바나나의 맛을 눈으로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 있다. 반투명 플라스틱을 통해 은은하고 맛깔스럽게 흘러나오

는 노란색은 바나나의 향긋하고 달디 단 맛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보기만 해도 입안에 달콤한 가득해지는 것 같다. 미각의 시각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대단히

성공적으로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공기 같은 존재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 너무 익숙해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이지만 알고 보면 엄청나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 정식으로는

‘바나나맛 우유’이지만 모두들 바나나 우유라고 부르는 음료도 그 중의 하나

다. 반투명의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이 연한 노란색 액체가 우리 주변에 자리를

잡은 지도 수십 년이 넘었다. 박물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도 어색하지 않을

문화인류학적 소산이다. 세월만 오래 된 것이 아니라 동네 슈퍼에서부터 고속도

로 휴게소, 학교 매점, 대형마트 등 우리가 가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에서든 볼 수

있으니 공기 같다는 말이 허투르지 않다. 그렇다고 이 오래된 음료가 그저 노익

장만 과시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요즘도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음료 중 1

위를 유지하고 있는 빛나는 현역이다. 하루가 일 년처럼 변해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 수많은 시간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도 휩쓸려 가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남은 것

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색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모양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맛

이 인상적인 것도 아닌데도 이 희한한 우유는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

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Brand Birth Story:70년대초 배고픔

감성 마케팅 전략

오래된 브랜드가 갖고 있는

다소 진부한 듯한 이미지를 극복

건강한, 친근한 브랜드 이미지 어필

“70년대 초 국민의 먹을거리 부족과 영양 결핍이 사

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바나나맛 우유 개발에 나섰다”

바나나맛 우유

이 름 : 바나나맛 우유

출 생 지 : 빙그레

나 이 : 34세

신 장 : 10cm

몸 무 게 : 240ml (든든함)

생 김 새 : 항아리 모양

별 명 : 수류탄 우유

성 격 : 가공우유

원유함량 : 85% 이상

판 매 량 : 누적 48억 개